밀레 Jean-Francois Millet (1814~1875) 자연주의- 자연을 주제로 숭고함과 웅대함으로 승화 쿠르베나 마네와 달리 도시를 벗어나 시골에서 사실주의 작가로 활동한 밀레는 다른 주제의식을 소유한 작가였다. 크락은(Clark) Absolute Bourgeois에서 밀레의 주제가 자신의 '노동'으로 주어진 형태에다 의식으로서의 무게가 매일의 일상을 보편적인 숭고함과 웅대함으로 승화시킨 것으로 해석했다. 밀레를 자신의 논의의 틀에 맞게 적용시킨 크락의 주장은 나름대로 그의 작품을 적절하게 이해했고 그의 주제와 당시 계층의 문제를 연결하려는 의도가 돋보인다. 밀레는 자신이 유행하는 양식을 따라 팔릴 그림을 제작할 수도 있었지만 그것을 피하고 굳이 이러한 주제를 계속 추구했다는 점에서 상당히 의미가 있는 계몽주의적, 금욕주의적 작가이다. 밀레와 바르비종(Barbizon) 파는 사실주의 작가들이면서도 낭만주의적 경향이 강했기에, 농촌 생활의 구체적 노동과 환경을 다루지만, 날카로운 비판의식보다는 미화된 고요함이 있다 피카소의 그림을 많은 사람들이 어려워하고 이해하기 힘들다고 하는 반면 밀레의 그림은 뭐랄까... 보는 이로 하여금 그 사람이 미술을 좋아한다거나 작품을 알아보는 심미안을 가지고 있지도 않아도 평온한 기분을 들게 한다. 조용하고 약간의 설레임도 생기고 한참을 바라보고 있어도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밀레의 그림은 대다수 굉장히 사실적이다. 그래서 사실주의 화가라고 불리기도 한다. '사실적이다'... 즉 그림이 아니라 꼭 사진을 보는 것과 같다. 그것보다 더 실감나게 표현한다면 밀레의 작품은 그림이 아닌 눈앞에 보이는 광경과도 같다. 피카소나 고흐 같은 그림은 명작이라 해도 솔직히 해석하긴 어렵다고 생각된다. 밀레가 그린 농민들은 바르비종에서 땅에 의지하며 살아가는 가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보게되는 작품 '만종'에 대해서 밀레 자신은 문학적인 감정보다는 음악적인 감정을 더 강조했다고 합니다. 밀레의 정신은 훗날 쿠르베의 사실주의로 이어졌다. 가장 관심을 끄는 밀레의 ‘만종’은 자연을 향한 깊은 철학적 성찰을 담고 있는 새로운 양식의 종교화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만종’은 하루의 일과를 끝낸 농부 부부가 황혼이 지기 시작한 전원에서 기도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장 프랑수아 밀레가 그린 명화 '만종(晩鍾)'은 프랑스의 자랑이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백화점 소유주였던 알프레드 쇼사르가 80만 프랑에 이 작품을 구입 해 루브르 박물관에 기증한 후 한 번도 거래된 적이 없었던 '만종'은 값을 매긴다는 게 불가능한 보물이다. 그러나 작품이 처음 만들어진 1860년 당시 밀레는 물감을 살 돈조차 없는 가난 한 화가에 불과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화상 아르투르 스테반스가 그림을 인수하는 조건으로 1000프랑을 지원한다.이 1000프랑으로 탄생한 그림이 바로 ' 만종'이다. 이렇게 탄생한 만종은 100년 만에 80만 프랑 값어치를 얻었고 그로부터 또 100년이 지난 지금 프랑스의 자존심이자 전세계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보물이 됐다. 1000프랑을 지원한 것이 국부(國富)를 일구어낸 것이다. 루브르에 돌아오기 전 '만종'은 미국 아메리카 미술협회에 팔렸다. 프랑스 측은 국회와 행정부는 물론 모금활동까지 벌여가며 '만종'이 미국에 팔리는 것을 막으려 했다.그러나 부자나라 미국을 당할 수는 없었다. 프랑스가 자존심이 상한 채 주저앉아 있을 무렵 백화점 재벌 알프레드 쇼사르가 미국에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고 만종' 을 다시 사들인 것이다. 쇼사르는 이 그림을 개인 자격으로 소유하지 않고 루브르에 기증했다. 예술의 가치를 알아본 쇼사르가 없었다면 '만종'은 지금쯤 미국 어느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을 것이다. 누군가가 이작품에 대해 느낌을 쓴 글을 잠시 보자 해질녘 농촌의 벌판, 서녘하늘로 넘어가는 붉은 태양은 혼신의 힘으로 하늘을 태우며 그림자를 길게 지상에 드리웠다. 일설에 의하면 바구니 속의 감자가 사실은 가난으로 인한 굶주림과 질병으로 숨진 자식이었으나. 미움, 질투,원망,고단함,피곤함등 모든 악한 마음을 품어주는, 어머니의 품과 같은 대지. 이제 그림을 다시 보면서 회화적이면서 사진적인 요소들을 분석해 보기로 하겠다. 하루의 일과를 끝낸 한 농부 부부가 황혼이 지기 시작한 전원을 배경으로 삼종기도를 드리고 있다. 들판에 굳건하게 서 있는 이들 부부의 모습은 마치 인간과 대지가 하나된 듯하다. 오른쪽 뒤로 성당의 첨탑에서 울려 퍼지는 저녁 종소리는 빛으로 변해 저녁 하늘을 환히 비추고 있다. 빛의 흐름을 놀랍도록 잘 표현한 작품이다. 이때 만약에 교회의 첨탑이 왼쪽으로 위치하였다면 어떻게 느낌이 다를까? 이것은 일반적으로 구도적인내용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나타낸다. 즉, 보다안정적이면서 집중감에 있어서 다르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자연의 질서에 따라 일하며 가난하고 피곤한 삶을 감사하는 이들 부부의 기도는 하나의 경건 자체를 나타낸다. 그 자신은 결코 농부가 아니었지만, 유년시절을 농촌에서 보냈던 밀레는 순박한 농민의 이미지를 빌어 전원의 순수함에 대한 향수를 표현하였다. 밀레가 산업 사회의 도래와 함께 농촌으로 돌아온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가 빈농으로 태어나 농촌에 대한 애정으로 평생을 가난 속에서도 농부들과 함께 하였다는 이야기는 과장된 사실이다. 밀레 자신이 당시 유행했던 푸르동의 사회주의 사상에 심취하여 노동자의 현실을 고발하고자 한 것은 더욱이 아니었다. 그는 노동을 하늘의 섭리로 알고 묵묵히 일하는 농민들의 모습을 통해 도시와 상반되는 전원의 가치를 종교적 색채로 그려낸 것이다. 그의 작품을 전제적인 분위기로 한번 보면 색채가 거의 비슷하게 전개 된 것울 볼 수 있다. 즉 전형적인 농촌의 색채인 황금빛이 강하게 압도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위에 작품들을 보면 전체적으로 톤이 비슷하게 표현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단조로운 농촌생활을 계절따라 다양하게 채색해주는 빛의 정조(情調)를 밀레만큼 잘 아는 화가는 없을 것이다. 밀레는 지평선을 2/3쯤 되는 지점에 놓는 너른 대지의 구도를 즐겨 이용하는 것 같다. 남편은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암송하는데 모자를 만지작, 만지작 딴짓을 하고 있다. 부인의 얼굴은 저녁 노을의 빛을 받아 highlight로 처리한 반면 남편은 죄인인 양 어둡게 처리해 버렸다. 그러고 나니 남편이 ‘왜 기도하는데 딴짓하는 가?’하는 스토리의 연결이 끊어지기는 했으나 일반적으로는 하루 일과를 마치고, 하느님의 보살핌에 감사하는 저녁기도로 마무리 된다. 원제는 Angelus입니다. 삼종기도의 시작이 '주님의 천사'가 마리아께 아뢰니...로 시작되기 때문이다. 바구니에 아기의 시체가 있다면 남편의 포즈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여기서 또한 작가의 시선을 한번 느껴보자. 즉 사진적으로 말하면 촬영자의 시점을 말하는 것이다. 눈 높이이 시점인가 아니다 눈 높이보다는 살짝 아래에서 위로 바라보는 시점이다. 그것은 바로 감상자로 하여금 저 멀리 지평선의 위치를 조절하기 위한 배려이며 두 인물과 지평선가의 적절한 위치를 위함이다. 특히 일반적으로 인물촬영에 있어서 모델의 눈높이보다 살짝 낮은 곳에서 촬영을 해보자. 개인적으로 이 작품을 보게 되면 감성적으로 강하게 다가오는 것들이 있다. 그것은 왜 그럴까라고 하는 의문에서 다시한번 작품을 살펴보면 바로 저 뒷편에 위치한 교회의 종탐의 절묘한 위치와 크기의 표현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소위 원근법적 표현에 있어서 전형적으로 보여지는 깊이감의 극치이다. 우리가 이와같은 명화들을 감상하면서 느끼게 되는 감정들은 실제로 잠재의식에 자리잡게 되고 그것은 무의적으로 자신의 사진적 작업에도 표출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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